미국 역사와 지리 26장 - 미 금본위 제도
1865년 남북 전쟁 끝나고 1873년 부터 미국은 철도, 은행, 광산,철강,금융, 신문, 통신 분야의 기업들이 엄청나게 성장하였습니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급속한 성장에 따라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 석유왕 존 록펠러, 광산왕 마이어 구겐하임등 부호가 탄생되게 되었습니다.
1893년까지 미국 자본주의가 급속하게 발전되었는데, 정치는 부패했고, 국가의 비호를 받는 자본가는 더욱 부를 축척하고, 하층민은 가난에 허덕이다 보니, 이 시기가 겉만 찬란하고 속은 썩었다는 의미의 도금시대라고 일컫습니다.
당시의 미국은 북부와 서부에서 급속한 경제 성장을 맞았는데, 1860년에서 1890년까지 실질 임금은 60%이상 오르다 보니, 숙련공들의 임금이 유럽보다 많이 높아져서, 수백만명의 유럽이나, 중국등 아이사 이민자들이 쏟아져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1873년 이전 미국은 화폐량의 기준으로 금과 은 모두를 사용했습니다.
16:1의 비율로 은과 금의 가치가 정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전의 액면가 보다 많은 양의 은이 포함되어 있어서, 대량의 동전을 녹여 추출한 은을 유럽에 팔아 이윤을 취하는 업자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런 불법 행위를 통해 국부가 유출되는 것을 막고자 최초로 금본위제도가 도입되었습니다.
하지만, 미국 경제에도 1880년대부터 공황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금본위제도 하에서 금이 부족해 돈을 찍을 수가 없었는데, 이유는 골드러시때 생산된 금으로 지탱이 불가능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화폐의 가치가 상승하자 심각한 디플레이션(물가하락)과 경기침체가 닥쳤습니다.
농작물 가격이 하락하고, 노동자의 임금도 삭감되었습니다.
그로인해서, 1870년대에에 먼저 노동자와 농민들이 금의 보유량을 초과해서 지폐발행을 주장하는 그린백 운동을 벌었는데, 당시 지폐는 금으로 바꾸면 반값 밖에 안쳐주었습니다.
이후에 다시 은본위제도나 금과 은을 동시에 화폐량의 기준으로 삼는 복본위제도로 해결책을 제시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산업자본과 은행자본은 돈의 가치가 떨어져 인플레이션이 발행하면 손해이기에 결사 반대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