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3년 런던항에 영국 버지니아 식민지로 부터 담배 화물이 도착했습니다.
당시 담배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들판을 개간하고 잎을 수확해 건조 후 포장을 해야하는 힘든 노동이 필요했습니다.
식민지에서 지주가 담배로 수익을 보기 위해서 일할 노동력이 필요했으며,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회구조를 조직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추후 노예제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1619년 아프리카인 스무 명이 네덜란드 상선에 실려 제임스타운 식민지에 도착했습니다.
이들은 아마도 전쟁이나, 다툼이 있는 부족의 습격에서 사로잡혀 노예로 팔려 왔을 것입니다.
이들은 영국이 북아메리카에 개척한 식민지에 처음으로 데려온 흑인이었습니다.
비록 그들은 자유의 몸이 아니었지만, 버지니아에서는 아직 노예 신분도 아니었습니다.
당시 노예는 법에 의해 재산으로 간주되는 사람이었습니다.
노예 신분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속해 있으며 종신토록 또는 주인이 자유롭게 풀어주기 전까지는 대가 없이 일해야 했습니다.
1619년 버지니아에는 노예제를 합법으로 규정한 법이 없었습니다.
네덜란드 상선에 실려 온 아프리카인들은 비록 팔리는 신세이기는 했어도 노예로서 팔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계약하인이었으며 당시 식민지로 건너온 많은 백인 노동자도 같은 신분이었습니다.
계약하인이 되면 법이 정한 대로 계약을 맺어 일정 기간 주인을 위해 일해야 했습니다.
계약기간은 보통 4년에서 7년이었습니다.
주인이 아메리카행 항해 비용을 대주거나 다른 누군가에게서 돈을 주고 데려왔다면 그 사람은 하인이 되어 주인에게 노동할 의무를 지게 됩니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계약하인은 자유의 몸이 되어 일을 구할 수 있고 땅의 소유권도 얻을 수 있었고 자기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1700년 이전에 버지니아 식민지로 온 사람 가운데 3/4이 계약 하인이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백인으로 영국, 아일랜드, 독일 출신이었습니다.
이들은 가난한 계급 출신, 유죄출신, 집 없는 사람, 실업자등 사회에서 버림받거나 빚을 갚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사기를 당해 하인 계약을 맺거나 납치당한 사람, 새 출발을 위해 자발적으로 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버지니아에서 그들은 아프리카 출신 하인들과 함께 일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고향도 언어도 달랐던 흑인과 백인 노동자들은 서로를 이해할수 있는 폭도 그만큼 좁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착취와 혹사에 시달리는 점은 같은 처지였습니다.
그 당시 계약 하인은 목에 쇠사슬이 채워진 하인도 있었으며, 모든 하인은 주인이 다스리는 영역을 벗어나려면 통행 허가증을 내 보여야 했으며, 구타당히기도 하고 때로는 고문도 받기도 했으며, 형편없는 음식을 먹고 비참한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계약하인이 되면 흑인과 백인 남자와 여자 할 것 없이 농장에서 극도의 노동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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