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전 시대
미국 내에서 개혁 운동이 전개되는 동안 유럽에서는 전면전의 위기가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로 이루어진 3국 동맹과 영국, 프랑스, 러시아로 이루어진 3국 협상 세력이 팽팽히 맞선 가운데사소한 문제들로 첨예한 대립을 보이면서 전쟁으로 돌입할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1912년과 1913년에 발생한 발칸 전쟁은 위기 상황을 일촉즉발 단계까지 몰아 가게 되었습니다.
미국 윌슨 대통령은 세계문제에 상단한 식견을 가지고 있는 에드워드 하우스 대령 ( 병역을 수행하지 않은 명예 계급) 을 유럽으로 보내게 되었는데, 보기에는 여행이였지만 유럽 열강들의 의향을 타진해 보고 미국이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 오라는 특별 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베를린을 방문한 하우스 대령은 알프레트 폰티르피츠 제독을 만나 전쟁을 피해야 한다고 말을 했지만, 폰 티르피츠 제독도 , 카이제르도 그리고 빌헬름 2세 항제까지도 전쟁을 옹호 하였습니다.
유럽 주요 국가들의 정세를 살펴 본 하우스 대령은 윌슨 대통령에게 "독일이 칼을 갈고 있는지도 모른 채 프랑스는 혁명에 몰입해 있고, 영국은 사교계의 행사에 완전히 도취되어 있습니다." 라고 편지를 썼습니다.
하우스 대령이 윌슨에게 편지를 보낼 때만해도 유럽에서는 전쟁이 발발할것이라 생각한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1914년 6월 29일에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를 방문 중이던 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난트 황태자 부처가 세르비아의 민족주의자에게 암살된 ' 사라예보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에 오스트리아 정부는 독일 정부로 부터 무조건적인 지원을 약속 받고 그래 7월 세르비아에 선전포를 하였습니다.
이때 하우스 대령은 독일 총리 앞으로 전쟁을 막기 위해서 미국이 도울 일이 없는지 타진해 보왔으나 아무런 회답도 받지를 못했습니다.
1914년 8월 13일, 독일은 프랑스에게 선전포고를 하면서, 세계1차 대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미국 내에서는 1차 대전은 단지 흥미꺼리로 여겨졌으며, 미국 국민은 관객으로써 바라만 볼 뿐 이였습니다.
윌슨 대통령은 중립을 선언했고, 2주 후에는 미국 국민들을 향해서도 동의를 구했습니다.
단, 주식거래소만 폐쇄를 하였지만, 유럽에 조상을 둔 모든 미국인들은 조상으로 부터 많은 것을 받았기에 그들은 영국과 프랑스에 대한 호의감을 갖고 있는 대신, 독일에 대해서는 비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전히 중립정책을 고수한 윌슨 행정부는 중립국으로서 상당히 많은 이익을 연합국 측의 물품 구입으로 벌어 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미국은 갑작스런 공업과 농업의 팽창이 이루어지고, 임금과 물가가 상승했고 주식거래가 재개된 윌스트리트에서는 주식가격이 폭등하며, 술집는 밤새도록 시끄러울 정도로 만원이였으며, 사치품을 파는 가게 역시 손님이 넘처 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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